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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을 하는 사람 - 찬양을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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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느린 템포로 부르게 되는 이 찬양은, 그 느린 템포에도 불구하고 찬양 속에 담겨있는 예수 보혈의 은혜로 인해서 예배나 부흥회 때 많이 부르게 되는데요. 실제로 이 찬양을 통해서 얻은 간증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임종 직전에 계신 분들께 이 찬송을 계속 불러드리면 아주 평안한 가운데 임종을 맞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요. 찬양이 겉으로 들려지는 것은 세상 다른 노래와 같지만, 세상의 노래와는 확실히 다르게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찬송은 루이스 하트소우 목사의 작사 작곡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루이스 하트소우 목사는 1828년 8월 31일에 뉴욕 주의 남부 이자카에서 태어나서 1852년 카제노비아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이듬해 감리교회의 목사가 되어서 중부의 유데카시 등 여러 교회에서 목회자로 사역했는데요.

그 후에 15년 동안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1869년에 창립된 유타 선교부의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44세 때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죠. 하지만 거기서 사역을 끝내지 않고 그는 럭키 산기슭에 살면서 찬송가의 작사 작곡에 전념했는데요.

그의 작품은 ‘부흥사’라는 잡지나, 영국에서 발간된 ‘거룩한 길잡이’란 잡지에 실려서 널리 퍼졌습니다. 그리고 무디 전도단에는 매년 참여해서 자신이 지은 찬송가로 봉사하기도 했습니다.

 

 

 

 

원래 이 찬송가의 제목은 ‘당신이 반기는 음성을 내가 듣나이다’인데요.

 하트소우 목사가 1872년 아이오와주 에프어쓰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할 때 결신자들을 초청화는 찬송가로 사용하기 위해서 요한일서 1장 7절의 말씀을 가지고 작사 작곡한 것이라고 합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장 7절의 말씀인데요. 이 말씀은 우리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간단하고 명료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곡은 부흥집회 찬송 인도자로 유명한 음악가인 생키에게로 보내졌고, 생키는 이 곡을 ‘찬송과 성가’라는 찬송가집에 실었는데요. 이때부터 이 찬송은 부흥집회 때마다 새신자를 초청하는 찬송가로 널리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곡에 얽힌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워싱턴에 거의 20년간을 교회 문밖에서 빙빙 돌기만 하고 들어가기를 주저하던 한 상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느 부흥집회에서 들리는 이 찬송소리에 발걸음을 멈췄죠.

1절이 끝나고, 2절이 끝나고. 3절이 계속 불리면서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골고다의 보혈로 날 씻어주소서’라는 후렴이 불리는 순간 그는 자신을 부르는 예수님의 음성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교회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결신자들이 강단 밑에 나가 무릎을 꿇는 그 자리에 자신도 모르게 같이 무릎을 꿇게 되었는데요. 바로 이 찬송의 위력이었습니다. 이 찬송으로 말미암아 이처럼 많은 사람이 주님 앞으로 인도되었습니다.

 

 

 

 

혹 어떤 사람들은 ‘골고다의 보혈’을 ‘예수님의 보혈’로 개사하여 부르기도 하는데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꼭 그렇게 고쳐 불러야 그 찬송의 보혈이 예수님의 보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걸까요?

찬송시는 ‘시’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적표현이 용납될 수 있고, ‘보혈’이란 단어 그 자체가 예수님의 보혈이란 것을 이미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불길로 우리의 죄를 태운다’는 것처럼 복음의 내용과 다른 가사가 아니라면  구태여 그렇게 고쳐 부를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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